发布时间:
来源:
韩国新华网
- 안중근의사기념관과 침화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렬관 찾아
10월 16일, ‘2026 한중 청소년 역사 탐방단’이 공동의 기억을 간직한 두 곳의 현장을 찾았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침화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열관이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과 유적 사이를 걸으며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함께 싸웠던 과거의 시간을 마주했다.

할빈 역 옆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옛 역사의 플래트홈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처마 밑 시계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총성이 울렸던 그 순간에 멈춰 서 있었다. 31세 나이로 의연히 순국한 항일 선구자 안중근의사는 중한 량국이 함께 존경하는 인물이다. 100년의 시간을 넘어 전해지는 그의 기개는 현장을 찾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이들은 안중근의사 전신 동상 앞에 깊이 고개를 숙이며 항일 선구자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이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침화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렬관이였다. 회색빛 건물이 뿜어내는 침울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전시관에 들어서자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희생자 명단 벽에는 3,000개의 검은 비석이 정렬되여 있었다. 1940년부터 1945년 사이 최소 3,000명의 중국인, 조선인, 쏘련인 등이 ‘특별 이송’이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끌려와 페스트, 탄저균, 동상 실험 등 50여종의 반인륜적 실험의 ‘재료’가 되여 희생됐다. 생존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유리 진렬장 속 녹슨 세균 배양 접시와 차가운 수술 도구들은 침묵 속에 당시의 참상을 증언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가져온 ‘관동군 방역급수부 류수 명부’는 3,497명의 부대 성원들의 정보를 담고 있어 이 범죄가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됐음을 명확히 립증하고 있었다. 해설사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고 아이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역사의 무게가 모두의 가슴을 짓눌렀다.
한국 학생 오완선은 동상 실험 전시판 앞에 멈춰 서서 얼어붙은 피해자의 사진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는 “학교에서 731부대의 역사를 배웠지만 오늘 그들의 죄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더욱 아프다”며 “ 우리는 이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런 역사는 절대 되풀이되여서는 안 된다.”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탐방단 지도교사 류립군은 눈물을 훔치며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 참담할 뿐”이라며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일본이 지금도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우리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본 청소년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며 “역사를 잊지 않고 강한 힘을 길러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역사 탐방단 단장인 권기식(한중도시우호협회 회장)은 “이번 행사는 길림성과 흑룡강성을 가로지르며 일본의 침략 행위와 만행을 기억하고 이를 통해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며 “량국 청소년들이 평화의 무게를 깨닫고 함께 손잡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관을 나서자 구름 사이로 쏟아진 가을 햇살이 출구의 회색 벽면을 따스하게 감쌌다.
등 뒤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의 역사가, 눈앞에는 평화로운 일상의 풍경이 교차했다. 이로써 이번 역사 탐방 활동은 막을 내렸다. 빛 속에 선 청소년들의 역사에 대한 공감과 평화를 향한 약속은 바람을 타고 더 먼 곳으로 퍼져 나갔다.
자료제공/길림신문, 이호국 기자
10월 16일, ‘2026 한중 청소년 역사 탐방단’이 공동의 기억을 간직한 두 곳의 현장을 찾았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침화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열관이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과 유적 사이를 걸으며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함께 싸웠던 과거의 시간을 마주했다.

할빈 역 옆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옛 역사의 플래트홈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처마 밑 시계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총성이 울렸던 그 순간에 멈춰 서 있었다. 31세 나이로 의연히 순국한 항일 선구자 안중근의사는 중한 량국이 함께 존경하는 인물이다. 100년의 시간을 넘어 전해지는 그의 기개는 현장을 찾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이들은 안중근의사 전신 동상 앞에 깊이 고개를 숙이며 항일 선구자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이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침화 일본군 제731부대 죄증진렬관이였다. 회색빛 건물이 뿜어내는 침울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전시관에 들어서자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희생자 명단 벽에는 3,000개의 검은 비석이 정렬되여 있었다. 1940년부터 1945년 사이 최소 3,000명의 중국인, 조선인, 쏘련인 등이 ‘특별 이송’이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끌려와 페스트, 탄저균, 동상 실험 등 50여종의 반인륜적 실험의 ‘재료’가 되여 희생됐다. 생존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유리 진렬장 속 녹슨 세균 배양 접시와 차가운 수술 도구들은 침묵 속에 당시의 참상을 증언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가져온 ‘관동군 방역급수부 류수 명부’는 3,497명의 부대 성원들의 정보를 담고 있어 이 범죄가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됐음을 명확히 립증하고 있었다. 해설사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고 아이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역사의 무게가 모두의 가슴을 짓눌렀다.
한국 학생 오완선은 동상 실험 전시판 앞에 멈춰 서서 얼어붙은 피해자의 사진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그는 “학교에서 731부대의 역사를 배웠지만 오늘 그들의 죄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더욱 아프다”며 “ 우리는 이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런 역사는 절대 되풀이되여서는 안 된다.”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탐방단 지도교사 류립군은 눈물을 훔치며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 참담할 뿐”이라며 “더욱 분노스러운 것은 일본이 지금도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우리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본 청소년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며 “역사를 잊지 않고 강한 힘을 길러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역사 탐방단 단장인 권기식(한중도시우호협회 회장)은 “이번 행사는 길림성과 흑룡강성을 가로지르며 일본의 침략 행위와 만행을 기억하고 이를 통해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며 “량국 청소년들이 평화의 무게를 깨닫고 함께 손잡고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관을 나서자 구름 사이로 쏟아진 가을 햇살이 출구의 회색 벽면을 따스하게 감쌌다.
등 뒤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의 역사가, 눈앞에는 평화로운 일상의 풍경이 교차했다. 이로써 이번 역사 탐방 활동은 막을 내렸다. 빛 속에 선 청소년들의 역사에 대한 공감과 평화를 향한 약속은 바람을 타고 더 먼 곳으로 퍼져 나갔다.
자료제공/길림신문, 이호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