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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新华网
림장호 (중국동포연합중앙회 부산경남 지회장 · 사진작가)
내가 처음 카메라를 잡고 펜을 들기 시작한 것은 어느덧 33년 전인 1993년의 일이다. 룡정시 통신보도협회와 촬영가협회에 가입하며 정식으로 활동의 첫발을 뗐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이 글을 쓴다. 보잘것없는 나의 성과를 뽐내기 위함이 아니다. 지난날 인생의 거친 풍랑 속에서 방황하던 한 젊은이가 어떻게 자기만의 길을 찾아냈는지, 그 고뇌와 깨달음을 나누고 싶어서다.
나의 청춘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고 사회로 밀려났을 때,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귀찮게만 느껴졌다. 술로 시름을 달래고 TV 앞에 앉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마음 한구석은 늘 텅 비어 있었고, 학창 시절 공부를 게을리했던 자신에 대한 후회와 못난 부모를 만난 탓에 출세하지 못했다는 비겁한 원망만이 가득했다. 참으로 못나고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변일보》에서 읽은 기사 한 줄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일본의 한 고위 관료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은 거리에서 기름떡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어느 날 대신은 일본을 방문한 외국 귀빈을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닌 아들의 기름떡 장사터로 모셔갔다. 대신은 귀빈에게 아들의 떡을 맛보게 하며, 아들에게는 "일본에서 가장 이름난 기름떡 장수가 되거라"라고 격려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모나 운명을 탓하며 주저앉아 있던 내 모습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나는 그날로 결심했다. 더 이상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내 발로 당당히 나아갈 길을 개척하겠노라고. 나는 평소 관심이 있었던 글쓰기와 촬영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무리 정성을 다해 투고해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넓은 바다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끈질기게 쓰고 또 찍었다.
그렇게 매달리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연변텔레비전 ‘고향의 아침’ 프로에 나의 사적이 방송되는 영광을 안았고, 《연변일보》, 《길림신문》, 《료녕신문》, 《흑룡강신문》 등 주요 언론에 나의 글과 사진이 수없이 발표되었다.
1996년, 나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한국으로 진출했다. 낯선 땅이었지만 내 발밑의 길을 믿고 열심히 땀 흘려 일했다. 그 덕분에 딸자식을 훌륭히 키워 대학 공부까지 시킬 수 있었고, 가정을 든든하게 일궈냈다. 생업의 현장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3회의 개인 사진전을 개최하며 나만의 작품 세계를 확고히 구축했고, 한국 재외동포사진전에서 입선하는 기쁨도 맛보았다.
현재 나는 중국동포연합중앙회 부산경남지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동포 사회를 위해 활약하며, 여전히 내 뜻대로 아름다운 풍경과 삶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돌아보면 인생에는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굽이굽이 휜 길도 있고, 가파른 오르막도 있다. 어떤 길이든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부지런히 걷는 사람만이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길은 어디 멀리 신기루처럼 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 바로 나의 발밑에 이미 길은 나 있다. 당신의 발밑에는 지금 어떤 길이 놓여 있는가?
림장호(林長浩)프로필
현직:
중국동포연합중앙회 부산경남지회 지회장 / 사진작가
경력:
1993년 룡정시 통신보도협회 및 주촬영가협회 회원 입회
1996년 연변텔레비전(YBTV) ‘고향의 아침’ 출연 및 사적 방송
《연변일보》, 《길림신문》, 《료녕신문》, 《흑룡강신문》 등 주요 언론 작품 다수 발표
개인 사진전 3회 개최 및 한국 재외동포사진전 입선
편집/한국신화보 이호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