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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송미 작가 묵향문학회 한국지회 사무국장
내 마음 한켠에는 나만이 알고 있는 작은 숲이 있다. 누구에게도 쉽게 보여지지 않는, 평범한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으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축축한 흙냄새와 잔잔한 바람 소리가 어우러진 공간이 고요히 펼쳐진다. 그 숲 어딘가에는 희미하지만 결코 꺼지지 않는 작은 빛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나는 힘들 때마다 그 숲으로 들어가곤 했다. 젊은 시절, 실련의 고통에 모대기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어깨 들먹이며 흐느끼 울 때, 겨울바람은 유난히 매서웠고 세상은 얼어붙은 듯 감각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 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문득 내 마음속 숲을 떠올렸다. 그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희미하게 반짝이는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누군가 속삭이듯 들려오는 그 빛의 언어는 그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후에도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가 몇 달 만에 접어야 했던 일도 있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밖으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내 안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갔다. 그 숲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빛은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해 전, 내가 사는 낡은 다세대 주택 옆집에 한 처녀가 이사 왔다. 스물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키가 크지 않았고, 마른 체구에 늘 단정하게 묶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 이름은 미정이라 했는데 처음 인사를 나눌 때 그녀의 눈빛은 유난히 맑으면서도 어딘가 깊은 피로가 배어 있었다.
그녀는 인근 식당에서 일했다. 아침 여섯 시면 이미 부엌에서 밥 짓는 소리가 들렸고 밤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어떤 날엔 벽 너머로 작은 흐느낌 소리마저 들려왔다. 숨을 죽이고 울음을 참는 듯한 그 소리는 오래전 나의 어느 밤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나는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다음 날 아침이면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날씨가 좋네요.”
그녀의 미소는 꾸며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만들어낸 단단한 빛 같았다.
한 번은 우연히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혼자 살아왔다고 했다. 힘들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잠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힘들죠. 그래도… 버텨야죠. 아침이 오잖아요.”
그 말은 단순했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녀의 말 속에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확신, 어둠을 통과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조용한 믿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도 분명 나와 같은 숲이 존재하며 그 숲 어딘가엔 분명 작은 빛 하나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때로는 이유 없이 무너지고 예고 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 작은 빛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다시 한 걸음 내딛게 하는 아주 미약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가끔 내 마음의 숲을 찾는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그 길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늘 그 빛을 만난다. 예전보다 조금 더 또렷해진, 그러나 여전히 따뜻한 빛을 만난다.
옆집 처녀 미정의 삶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나의 오늘을 돌아본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무게를 견디고 있지만 어쩌면 같은 빛을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빛이여, 사라지지 말아다오.
그대가 있기에 나는 오늘도 다시 숲으로 들어가고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올 수 있으리.
류송미 작가 프로필
1967년 10월 출생
1987년중국제1사범학교 졸업
1989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35년 동안 교사사업에 종사
학생글짓기지도
묵향문학회 한국지회 사무국장
한국아동청소년 문학협회 회원
시집 어느날의 토크쇼 출간
외 수필 가사 동시 동요 등 수십편 발표
편집/한국신화보 이호국 기자
